광해군의 중립외교가 당시 사대부들에게 욕 먹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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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7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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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명나라군의 전투력과 지원이 있었기에 조선군이 재정비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조선이 거둔 승리가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정유재란 때는 명군이 지상군의 주력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5만~7만 4천 명이었으나, 정유재란 때는 파견된 명군의 규모가 무려 9만~11만 7천 명이나 되었다. 특히 정유재란 당시에는 명군이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군과 전면전을 전개하며 일본군을 압박했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만약 명군의 이러한 활약이 없었다면 설사 히데요시가 죽었더라도 일본군이 한반도 남부에서 철수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다
병력만 파병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 백성들이 수확을 못 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들은 만력제는 명나라의 재정을 털어 곡창 지대인 산둥성의 쌀을 매입해 조선 백성을 위해 원조했다. 이러한 지원이 없었다면 경신대기근급의 참사가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https://namu.wiki/w/만력제
명 만력제의 도움으로 조선은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었음. 괜히 조선에서 만력제를 기린다고 여기저기 사당을 세우고 기린게 아님
그런데 전쟁 끝나고 15년도 안지난 시점에서 명과 후금이 대립하자 광헤군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겠다고 함
현대로 비유하면 6.25때 미국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살아난뒤 15년이 지난후 중국이 성장하자 한국 대통령이 미국편 안들고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줄타기 하자고 함. 100% 여기저기서 미국편 안들고 왜 미국 중국 줄타기 하냐고 비판하고 난리남
거기다 광해군때 후금은 산해관 하나 뚫지도 못하고 명의 내부반란 없었으면 산해관 넘을 생각도 못했던 상황. 명의 편을 드는게 정배고 후금의 편을 드는게 역배였던 상황임. 명분상으로도 실리로도 명과 후금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는건 당시 사대부들에겐 미친짓으로 보일 수 밖에 없음
병력만 파병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 백성들이 수확을 못 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들은 만력제는 명나라의 재정을 털어 곡창 지대인 산둥성의 쌀을 매입해 조선 백성을 위해 원조했다. 이러한 지원이 없었다면 경신대기근급의 참사가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https://namu.wiki/w/만력제
명 만력제의 도움으로 조선은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었음. 괜히 조선에서 만력제를 기린다고 여기저기 사당을 세우고 기린게 아님
그런데 전쟁 끝나고 15년도 안지난 시점에서 명과 후금이 대립하자 광헤군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겠다고 함
현대로 비유하면 6.25때 미국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살아난뒤 15년이 지난후 중국이 성장하자 한국 대통령이 미국편 안들고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줄타기 하자고 함. 100% 여기저기서 미국편 안들고 왜 미국 중국 줄타기 하냐고 비판하고 난리남
거기다 광해군때 후금은 산해관 하나 뚫지도 못하고 명의 내부반란 없었으면 산해관 넘을 생각도 못했던 상황. 명의 편을 드는게 정배고 후금의 편을 드는게 역배였던 상황임. 명분상으로도 실리로도 명과 후금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는건 당시 사대부들에겐 미친짓으로 보일 수 밖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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